리버풀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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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프로 축구 클럽. 연고지는 머지사이드 주 리버풀. 홈 구장은 안필드.
1892년에 창단되어 빌 샹클리와 밥 페이즐리 감독 시절, 붉은 제국이라 불리는 전성기를 보냈고[10]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인 이스탄불의 기적과 안필드의 기적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1부 리그 통산 19회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잉글랜드 클럽 중 UEFA 챔피언스 리그 최다 우승팀으로[11] 잉글랜드에서 유일하게 빅 이어를 영구 소장한[12] 명문 클럽이다.
2. 역사
상당히 굴곡진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영광스런 시간만큼 내리막길도 분명 걸었던 팀이다. 1892년 팀의 창단 이후 영광스런 시절을 보냈다가 급격한 하락세로 오랜 좌절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는데, 1959년 빌 샹클리가 부임하여 팀을 재정비하고 확실한 성적을 거두며 팀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게 될 기반을 닦았다. 그리고 명예롭게 은퇴하고 리버풀 감독직 바통을 자신을 보조했던 밥 페이즐리에게 넘겼다. 페이즐리는 전임 감독보다 팀을 더 성공적으로 이끌며 지금도 회자될 멋진 영광의 순간들을 만들어냈다.[14]
리버풀의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70년대 중반 ~ 1980년대 중반 케니 달글리시, 이안 러쉬와 함께 스코틀랜드 축구 역사상 올타임 넘버원 레전드인 그레이엄 수네스를 앞세운 화끈한 공격축구로 유럽과 잉글랜드를 평정했다. 잉글랜드를 넘어 유럽을 붉게 물들였다고 해서 '''붉은 제국'''이라는 이름이 이때 리버풀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후임 감독인 조 페이건과 감독이 된 케니 달글리시도 좋은 성적들을 거두었으나 1989년 일어난 힐스버러 참사로 인한 충격과 후유증으로 달글리시가 사임한 1991년 이후에는 왕좌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96명의 축구팬들이 비극적인 사고로 운명한 이 사고는 선수들, 감독, 리버풀 팬들까지 클럽 전체에 거대한 트라우마를 입혔으며, 이 때문에 빌 샹클리 때부터 공들여 만들어 왔던 영광스런 팀이 서서히 무너져가기 시작했다. 힐스버러 참사가 신호탄[15] 이 되어 리그는 1992년에 프리미어 리그라는 이름으로 개편된 후, 리버풀은 오랜 시간 리그 우승 트로피와 인연을 맺지 못했었다. 결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가 2013년에 20회 리그 우승으로 리버풀의 우승 기록을 추월했으며, 리버풀의 리그 우승은 2019-20 시즌 전까지 18회 우승에 멈춰 있었다. 다만 유럽 무대에서는 두각을 보여[16] 유로파 리그 우승(2001년)과 두 번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 트로피(2005년, 2019년)를 들게 된다.
또 예전의 영광의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제라르 울리에 감독 시절, 2000-01 시즌에 FA컵, 리그컵, 유로파리그에서 3개의 트로피를 따내기도 하였다. 이후 라파엘 베니테스가 2004-05 시즌에 취임하고 4-2-3-1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공수간격을 극단적으로 압축시킨 역습 축구로 돌풍을 일으키며 2004-05 시즌 5번째 UCL 우승, 2005-06 시즌 FA컵 우승, 2006-07 시즌 UCL 준우승, 2008-09 시즌 리그 준우승을 기록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팬들은 베니테즈 감독이 클럽 역사상 제 2의 전성기를 만들 것으로 기대했으나 전 시즌 리그 2위가 무색하게 2010년에 성적이 곤두박질치고 베니테즈는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리버풀은 이후 위르겐 클롭 감독이 부임할 때까지 프리미어리그 빅4의 위상에서 벗어난 본격적인 암흑기에 들어서게 되었다. 베니테즈는 분명 능력있는 명장이고 리그 준우승 당시 팀 퀄리티도 훌륭했지만 리버풀 침체의 모든 원인은 2007년에 리버풀을 인수한 톰 힉스와 질레트 구단주에게 있었다. 베니테즈에게 약속된 투자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으며 그렇잖아도 다른 빅클럽보다 얇은 스쿼드에서 오히려 월드클래스 선수들이 외부로 빠져나가버린 것. 질레트 - 힉스 구단주들은 분명 리버풀의 미래에 좋지 않은 운영 모습을 보여주었고 결국 2010년에 존 헨리[17] 구단주에게 인수되었다.
베니테즈 감독 이후 부임한 로이 호지슨, 케니 달글리시 체제에서는 심각한 부진을 면치못한 리버풀이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 다행히도 달글리시 감독이 2012년에 리그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것은 큰 소득이었다. 이후 부임한 브렌던 로저스[18] 역시 루이스 수아레스를 앞세운 공격축구로 2013-14 시즌에 반짝 돌풍을 일으켰지만 84점으로 리그 2위를 기록하며 리그 우승에 실패했고, 그 다음 시즌에 이적한 수아레스의 공백을 이겨내지 못한 로저스는 2년 후 경질됐다.
위르겐 클롭이 부임하고 나서는 게겐 프레싱을 기반으로 한 빠르고 역동적인 압박축구가 서서히 이식되어 2016-17 시즌 리그 4위, 2017-18 시즌 리그 4위 및 챔스 준우승, 2018-19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리그 준우승으로 몇 년간 리버풀을 괴롭혔던 암흑기를 청산하며 다시금 옛 위상을 되찾았고, 탄탄한 선수층을 바탕으로 2019-20 시즌 프리미어 리그 우승까지 차지하므로서 완벽하게 부활했다.
프리미어리그의 빅클럽들, 빅6 중 유럽 무대에서 유독 강한 면모를 보이는 팀이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 준우승 1회 준결승 1회, 8강 1회를 기록했고 망했던 2009-10 시즌에도 유로파리그 준결승까지는 갔다. 베니테스가 떠난 이후엔 유럽대항전에서 저조한 성적만을 기록하다가 위르겐 클롭이 부임한 이후 다시 유럽대항전에서의 명성을 회복했다. 클롭이 시즌 중 부임했던 2015-16 시즌 리버풀은 완성이 덜 된 멤버들만 가지고도 유로파리그 결승에 올랐으며 2017-18 시즌 챔피언스 리그 8강 토너먼트에서 해당 시즌 프리미어리그 생태계 포식자였던 맨체스터 시티를 맞아 홈, 원정에서 모두 승리하고 4강에 진출했으며 결국 결승전까지 올라갔다. 2018-19 시즌에는 토트넘 홋스퍼 FC를 챔스 결승에서 맞아 2-0으로 꺾고 빅 이어를 들어올렸다. 결과물도 UEFA 챔피언스 리그 트로피 6개, UEFA 유로파 리그 트로피 3개로 잉글랜드에서 가장 독보적이다.
2.1. 위르겐 클롭 부임 이전: 공격수들의 영광과 불운
헤이젤 참사와 힐스버러 참사가 연이어 터지게 되고 그레이엄 수네스, 로이 에반스 감독 체제에서 리빌딩까지 실패했지만, 제라르 울리에 감독이 취임하며 부진이 어느정도 수습이 되는 듯 했다. 그것이 바로 2000-01 시즌 FA컵, 리그컵, UEFA컵[19] , 커뮤니티 실드, UEFA 슈퍼컵의 5관왕으로 증명이 되었다. 프랜차이즈 스타 마이클 오언은 이때 발롱도르까지 수상했다. 리그에서도 3위를 기록했지만, 오언과 에밀 헤스키 조합은 30골을 합작하며 스트라이커가 약하다는 평가는 받는 팀이 아니었다. 오언은 다음 시즌에도 19골을 터뜨리며 팀의 리그 준우승을 이끌었지만, 헤스키가 부진했고, 2위임에도 팀득점 67점으로 1위 아스날의 79득점, 3위 맨유의 87득점에 비하면 저조한 득점력을 보이기 시작하며, 리버풀의 스트라이커 잔혹사가 시작되었다.
2002-03 시즌을 앞두고 월드컵에서 맹활약을 펼친 세네갈의 연쇄살인마라는 별명을 가진 공격수 엘 하지 디우프를 1000만 파운드에 영입을 했다. 전 소속팀인 리그앙의 RC 랑스에서도 두 시즌 동안 18골을 뽑아낸 검증된 공격수였고, 월드컵에서 세네갈을 8강으로 이끈 맹활약을 했기에, 기대를 모은 영입이었으나, 두 시즌 동안 리그 55경기에 나와서 3골, 리그컵 7경기 나와서 3골 총 79경기에 출전해서 6골을 넣는 최악의 부진을 선보이며,[20] 결국 2004-05 시즌에 볼튼 원더러스로 임대를 떠났고, 거기서는 리그 9골을 터뜨리며 완전이적을 해버린다. 400만 파운드에...리버풀은 5위로 추락하여 다음 시즌 챔스도 못나갈뻔 했으나 그 시즌 챔스를 우승해버려서 챔스 티켓을 놓치지는 않았다. 유스출신인 오언 꾸준히 19골, 16골을 기록해주고 있었고, 2001-02 시즌에 320만 파운드에 영입했던 밀란 바로시가 2002-03 시즌 총 12골을 넣어주었다. 그런데, 원더보이 마이클 오언마저도 시즌 종료 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된다. 퇴물 취급받던 에밀 헤스키마저 버밍엄 시티로 이적하게 되면서 리버풀의 공격진은 그야말로 멸망하게 되었다.
오언과 디우프가 사라진 2004-05 시즌 리버풀은 드디어 라파엘 베니테스가 감독으로 부임하였으나, 이미 공격진이 멸망된 상황. 바로시 혼자 분투한 시즌이었다. 지브릴 시세를 당시 리버풀 클럽 레코드인 1450만 파운드에 영입은 했지만, 영입한지 얼마 안 돼서 다리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게 되었고, 두 시즌 동안 리그 13골의 그냥 그런 활약을 보였다. 유로 2004에서 맹활약하며 득점왕에 오른 바로시가 간신히 9득점을 올렸을뿐. 이스탄불의 기적이 아니었으면 진짜 멸망한 시즌이었다. 그러나 밀란 바로시 조차 다음 시즌인 2005-06 시즌을 부상으로 통째로 날려버렸다. 2004-05 시즌 때 닐 멜러라는 반짝 스타가 갑툭튀 하긴 했지만, 그야말로 반짝 스타였을뿐.
2006-07 시즌 팀의 득점력 강화를 위해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에서 한창 물이 올랐던 상태의 디르크 카윗을 900만 파운드라는, 당시 리버풀의 재정 상황을 고려하면 꽤 큰 금액으로 영입했다. 카윗의 활동량이나 팀 플레이는 수준급이었으나 정작 폭발적인 득점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리그 12골로, 득점랭킹 9위에 오르긴 했지만. 그래도 이후 오랜 기간 동안 리버풀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기에 실패한 영입이라고는 볼 수 없다. 리버풀을 떠난 지 오래된 지금도 마치 맨유의 박지성처럼 팀을 위해 헌신적으로 뛰어주는 스타일인 그를 많은 콥들이 진심으로 좋아하며 레전드로 칭송하고 있다. 같은 시즌 60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뉴캐슬에서 크레이그 벨라미도 영입했지만 리그 7골로 빈곤한 득점력은 해결해주지 못했다. 대신, 바르셀로나와의 챔스 경기에서 맹활약하며 바르셀로나를 탈락시키긴 했다. 활약과 별개로 좋지 않은 인성과 말썽으로 시끄러웠던 인물이었던 그도 결국 다음 시즌 바로 팀을 떠났다.
결국 2007-08 시즌 이적시장에서 2000만 파운드라는 클럽 레코드를 기록하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페르난도 토레스를 영입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토레스의 이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크레이그 벨라미, 지브릴 시세, 마르크 곤살레스, 루이스 가르시아, 플로랑 시나마-퐁골 등 준주전급 자원 여러 명을 이적시켜야 했고, 이는 당시 선두권 경쟁을 벌이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FC, 아스날 FC에 비해 얇던 스쿼드 두께를 더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그래도 당시 초신성 공격수 토레스와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미드필더로 손꼽히는 스티븐 제라드 조합은 ''''제-토 라인''''이라는 이름으로 프리미어리그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페르난도 토레스에게도 이때가 자신의 축구 경력에서 가장 최고의 전성기 시절이었다. 네덜란드의 신성 라이언 바벨 역시 1150만 파운드의 거금을 들여 영입했지만, 기대치에 비해 2007-08 시즌 전반기에 반짝 활약한 것 이외에는 이적료값을 하지 못한 영입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토트넘 홋스퍼에서 로비 킨을 데려왔으나 구단주와 감독 사이의 알력 등 클럽 내부적인 사정으로 인해 6개월만에 반송 처리했고, 첼시에 토레스를 5000만 파운드에 넘기고 무려 3500만 파운드라는 패닉바이로 영입한 앤디 캐롤 역시 실패했다. 다만 AFC 아약스에서 2650만 파운드로 사온 루이스 수아레스가 월드 클래스의 기량을 보여주며 리버풀의 스트라이커 잔혹사는 여기서 사라지는 듯 했으나 수아레스를 FC 바르셀로나로 보내고 대체자로 영입한 마리오 발로텔리, 리키 램버트, 크리스티안 벤테케가 죄다 실패하며 잔혹사는 계속 되었다. 더 문제인 것는 저 셋의 활약도를 다 합쳐도 다니엘 스터리지의 발 끝에도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었다.[21] 그러나 그런 스터리지마저도 잦은 부상에 발목이 잡힌다.
2.2. 위르겐 클롭 부임 이후: 성공적인 리빌딩과 부활
그리고 2015년 10월, 머지사이드 더비 이후 브랜던 로저스 당시 리버풀 감독의 사임 이후 부임한 위르겐 클롭 현 리버풀 감독은 부임 첫 시즌이었던 2015-16 시즌 당시 겨울 이적시장 당시 특별한 선수 보강 없이 리그컵 및 UEFA 유로파 리그, 두 개의 컵 대회를 결승전까지 인도하는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그리고 클롭의 실질적인 풀타임 첫 시즌이었던 2016-17 시즌, 리버풀 FC는 본격적으로 선수 영입 및 방출을 통한 스쿼드 체질개선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 당시 영입 후 현재까지 리버풀의 주전급 선수가 된 주요 선수들은 아래와 같다.
사디오 마네는 영입 당시 오버페이라고 지적한 일각의 평이 무색할 정도로 현재 라힘 스털링과 더불어 리그 최고의 왼쪽 윙어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선수가 되었으며, 조르지뇨 바이날둠은 기복은 있으나 결정적인 순간들에 알토란과 같은 활약을 해주며 팀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조엘 마티프는 잦은 부상에 시달리긴 하지만 나올 때마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자원이다.
다음 시즌이었던 2017-18 시즌의 주요 선수 영입 목록을 보면 2016-17 시즌 이상으로 현재까지 리버풀 공수의 핵심 선수들이 안필드로 모이게 된다.
데뷔 시즌이었던 2017-18 시즌, 프리미어 리그 전체를 초토화시키며 역대 EPL 단일 시즌 최다골 기록을 수립하고 현재까지 리버풀 공격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한 모하메드 살라, 현재 리버풀을 넘어서 세계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우뚝 선 앤드루 로버트슨, 영입과 동시에 리버풀 중원의 에너자이저로 자리매김한 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에 더하여 리버풀의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던 수비를 한 차원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면서 2018-19 시즌 기준 EPL을 넘어서서 유럽무대 최고의 센터백으로 자리매김한 리버풀의 명실상부한 리더, 버질 판데이크까지 그야말로 2017-18 시즌 리버풀의 이적생들은 대박을 넘어선 초대박 영입 그 자체였다. 이 네 명 모두 2017-18 시즌, 11년 만에 리버풀을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까지 가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면서 이적 당시 있었던 오버페이 또는 B급선수 영입 논란을 무색케 하였다. 덤으로 위 네 명의 이적료를 다 합친 금액은 안필드에서 캄프 누로 가버린 에이스 필리페 쿠티뉴 한 명의 이적료 총액(£106M+옵션 £36M)과 비슷한 수준.
그리고 클롭 감독의 세 번째 풀타임 시즌인 2018-19 시즌, 1년 앞서 영입이 확정되어 있던 상태였던 나비 케이타를 비롯해 현역 골키퍼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특급 골리 알리송 베케르, 윙어 자리의 백업을 맡아줄 수 있는 제르단 샤키리, 그리고 리버풀의 오랜 고민거리였던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를 해결해준 파비뉴가 영입되었다. 여기까지 세 시즌 간 안필드로 온 주요 이적생들을 포지션별로 놓고 보면 진짜배기 영입이었다는 게 더 실감이 간다. 그렇게 성공적인 리빌딩을 바탕으로, 위르겐 클롭이 이끄는 리버풀은 2018-19 시즌 14년 만에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2019년 UEFA 슈퍼컵과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2019-20 시즌 30년 만에 프리미어 리그 우승까지 달성하면서 새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다만 물론 어느 클럽이 그렇듯이, 실패한 영입들도 있다. 그 극단적인 예시를 보여주는 경우가 바로 로리스 카리우스. 마인츠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독일의 차세대 S급 골키퍼로 거론되었으나, 16-17 시즌에 리버풀에 입단한 뒤 마인츠에서 보이던 안정적인 모습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고, 결국 오히려 미뇰레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겼다. 그 다음 시즌인 17-18 시즌에 미뇰레가 다시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다시 주전 자리를 꿰찰 수 있었으나 챔스 결승이라는 무대에서 미친 호러쇼를 보여주면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13번째 빅이어를 선물했다. 결국 리버풀은 여름 이적시장 로마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알리송 베케르를 당시 골키퍼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며 데려왔고[22] 결국 카리우스는 베식타스로 2년 임대를 갔다.
현재 리버풀의 베스트 일레븐 중 위르겐 클롭 감독이 부임 전부터 있었던 조던 헨더슨과 호베르투 피르미누, 그리고 유스 출신인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를 제외하면 모든 선수가 클롭 감독의 부임 후 세 시즌에 걸쳐서 영입되었으며, 이 중 다수의 선수들은 리버풀을 넘어서 프리미어리그 내 해당 포지션에서 이견없이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클롭 부임 이후 이적시장 내막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적시장에서의 성공의 또 다른 숨은 주역인 리버풀의 스포팅 디렉터 마이클 에드워즈 문서 참조.
3. 상징
지금이야 리버풀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클럽의 상징과도 같은 '''붉은색'''이고, 100년이 넘는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그러했으나, 19세기 말 갓 창단한 리버풀의 유니폼은 초창기 에버튼의 그것과 유사한 파랑-하양 디자인을 따랐다.[23] 물론 이 유니폼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폐기되었으며, 1894년에 리버풀 시의 상징색이기도 한 빨강을 처음으로 유니폼 디자인에 채용하였다. 이때부터 1964년까지, 오늘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니폼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는 빨강(상의)-하양(하의) 디자인을 고수하던 리버풀은 당시 감독이던 '''빌 샹클리'''의 제안으로 하의와 스타킹까지 붉은색으로 물들인다.
리버풀은 유니폼 상의에 메인 스폰서 로고를 부착하고 경기에 나선 잉글랜드 최초의 클럽이라는 독특한 기록도 보유하고 있는데, 1979년 히타치와 계약을 맺으면서였다. 그 후 리버풀은 크라운 페인트, 칼스버그 등을 거쳐 현재는 가슴에 스탠다드차타드의 로고를 새기고 있다. 한편 칼스버그와의 스폰서십 계약은 1992년부터 2011년까지 지속되었는데, 이는 잉글랜드 프로축구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유지된 계약이라고 한다."그(샹클리)는 온몸을 붉은색으로 물들이는 게 상대에게 위압감을 가져다줄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 날 그는 드레싱 룸으로 들어와서 로니 예이츠에게 빨간색 하의 한 벌을 건네더니, "이거 한 번 입어봐라. 어떤지 좀 보자." 라고 했다. 로니가 빨간 바지를 건네 받고 챙겨 입자 그는 "오, 로니, 장난 아니게 멋진데? 놀라워. 키가 2미터는 돼 보이네."라고 했다. 그 모습을 본 내가 제안하길, "아예 양말도 빨간색으로 해 버리죠? '''모두 빨간색으로 하고 나가요.'''" 샹클리는 찬성했고, 그것이 리버풀의 새로운 상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안 세인트 존,[24]
그의 자서전에서.
공식 구단 엠블럼 윗면에는 그 유명한 '''YNWA''' 문구가, 방패 안에는 리버풀 시의 문장인 라이버 버드가 자리해 있으며, 양쪽의 불꽃은 안필드 밖에 위치한 힐스보로 참사 기념비에 있는 성화를 표현한 것이다.
위의 '''샹클리 게이트'''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리버풀의 전설적인 명장, 빌 샹클리를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것이다. 1982년 그의 사후, 부인이던 네시가 개회식을 하여 지금까지 안필드 홈구장을 지키고 있다. 그의 모습을 본뜬 청동상도 1997년에 안필드에 세워졌다. ''''리버풀은 나를 위해, 나는 리버풀을 위해 만들어졌다''''라는 명언을 남긴 감독답게 그는 비록 모두의 곁을 떠났지만 말 그대로 리버풀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4. 응원가
4.1. You'll Never Walk Alone
안필드에서 리버풀 경기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리버풀의 가장 극적이고 기념적인 순간에 노래하는 상징적인 응원가. 축구팬들이 흔히 보게 되는, 이 응원가에서 따온 약자 '''YNWA'''는 리버풀을 응원하는 콥들이 즐겨쓰는 슬로건이다.
4.2. Allez, Allez, Allez
2010년대 후반부터 리버풀 팬들 사이에서 급격히 흥하고 있는 응원가이다. 주로 유럽 대항전 경기 때 많이 듣게 되는데 2018년과 2019년에 유럽 챔피언스 리그에서 리버풀이 좋은 성적을 거두자 전세계의 팬들에게도 유명해지고 친숙해진 응원가다. 프랑스어로 '가자'라는 뜻인 중독있는 후렴구 Allez, Allez, Allez 부분을 떼창하는 것이 이 응원가의 백미.
가사 내용을 보면 간단하면서도 리버풀에 대한 콥 팬들의 자부심이 녹아있다. 여러 번 제패한 유럽대항전 우승에 대한 이야기와 리버풀 클럽의 전성기를 열었던 전설적인 명장, 빌 샹클리와 밥 페이즐리의 이름이 나와 있다.
사실 이 Allez, Allez, Allez 응원가는 리버풀 뿐만 아니고 여러 다른 클럽에서도 응원가로 쓰고 있다. 카디프 시티, 아스톤 빌라, 레인저스 FC, SSC 나폴리, FC 바르셀로나, FC 포르투[25]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 클럽들에서 멜로디만 똑같게 하고 가사는 자신들의 클럽에 맞게 써서 부르고 있다. 특이하게도 레인저스는 후렴구가 Allez가 아니라 Woah Woah Woah이다. 그래도 멜로디는 역시 똑같다.
K리그 대구FC[26] , 수원 삼성 블루윙즈 등의 클럽 역시 동일한 멜로디에 가사를 개사한 응원가를 사용하고 있다.
한편 위 동영상에서 노래를 부른 '제이미 웹스터' 뮤지션은 2019년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 열린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광장에서 결승전 직관을 하기 위해 모인 수만 명의 리버풀 콥 팬들 앞에서 공연을 가지기도 하였다.
5. 구장
5.1. 안필드
리버풀 FC의 홈 구장. 1884년에 개장하여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리버풀의 유산이다. 최근에 2016년, 안필드의 증축 공사가 마무리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홈팀에게는 든든한 요새이자 원정팀에게는 야유와 소음으로 가득찬 지옥 그 자체. 안필드를 무대로 리버풀은 유럽 대항전에서 두 번의 '''기적'''을 경험했는데, 2015-16 UEFA 유로파 리그 8강 2차전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추가 시간에 터진 극장골에 힘입어 4:3 역전승을 거뒀던 안필드의 기적(2016년)과 2018-19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2차전에서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1차전 0:3의 패배를 4:0 대역전극으로 뒤집어 냈던 안필드의 기적(2019년)이 있다. 참고로, 2017년 4월부터 2021년 1월까지 프리미어 리그에서 무려 '''68경기''' 동안 원정팀에게 단 한 번도 패배를 허용하지 않았다.[27]
6. 유니폼
7. The Kop
콥(Kop)은 리버풀 FC의 서포터즈를 통칭해 부르는 단어이다. 리버풀의 홈구장 안필드를 가득 메운 콥들의 열정적인 응원은 리버풀에겐 큰 힘을, 상대편에겐 상당한 부담감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28] 클럽에 대한 자부심과 충성심이 유별난 것으로 유명한데 비록 리버풀에게 힘든 시련이 없지 않았지만 과거 오랫동안 유럽 최강팀으로 군림했던 영광스런 역사가 있기에 그 시절이 다시 재현될 수 있다는 믿음을 항상 가지고 있다. 리버풀 홈에서 열리는 경기는 거의 매진이 될 정도로 현지 콥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리버풀 서포터들이 정말 많이 홈구장을 찾아오며 리버풀 입장에선 든든한 서포터즈이지만 과거에 콥 출신의 훌리건들이 원인이 된 헤이젤 참사로 빈축을 사기도 했고 힐스버러 참사로 인해 많은 리버풀 서포터들이 희생되는 어둡고 아픈 역사와 관련되기도 하였다.
콥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1906년 리버풀이 두 번째 1부 리그 우승을 한 후 구단에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새로 만든 스탠드에 보어 전쟁 때 많은 리버풀 출신 병사들이 전사한 곳의 지명인 스피온 콥(Spion Kop)을 추모의 의미로 붙인 것에서 유래한다. 1960-61 시즌에 2부 리그로 강등되었던 리버풀이 우승을 하며 1부 리그로 승격된 후 1962-63 시즌 블랙풀 FC와 시즌 첫 경기를 치렀는데, 이 당시 안필드에 입장한 5만 여명의 팬들 중 절반이 넘는 수의 관중이 골대 뒤의 스피온 콥 스탠드에 모여 리버풀을 외쳤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당시 최고의 인기인 비틀즈[29] 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덩달아 옆에 있던 다른 팬들도 같이 노래를 부르며 열정적으로 응원했고, 이런 열정적인 응원을 본 사람들이 스탠드의 이름을 따 리버풀의 서포터즈를 콥이라고 통칭하게 되었다.
리버풀 서포터즈, 콥들의 열정적인 응원의 대표적인 예시는 UEFA 챔피언스 리그/2018-19 시즌/4강 2경기 2차전 경기가 대표적이라 할 만하다. 경기 킥오프부터 90분 추가시간 지나서 경기 끝날 때까지 바르샤 선수들이 공을 잡을 때마다 맹렬한 야유를 퍼부었고, 리버풀 선수들이 공을 잡게 되면 열렬한 환호와 응원 함성을 보내주었다. 경기의 분위기를 거의 콥들의 응원이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리버풀은 이들의 용광로같은 기운에 힘입어 상대편에는 메시가 버티고 있고 3-0으로 열세에 빠져있던 상황을 4골을 집어넣어 역전시켜 버린다. 결국 그 시즌 마지막에 리버풀은 빅 이어를 들 수 있었고 리버풀 선수들은 이 영광을 이루게 해준 콥들에게 바친다는 뜻으로 리버풀 관중 앞에 빅 이어를 내려놓고 선수들과 콥 모두 <You'll never walk alone> 응원가를 부르는 감동적인 순간을 만들었다.
7.1. 국내 서포터즈 펍, 봉황당
국내 콥들이 모여 같이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서울 연남동 홍대 부근에 위치한 리버풀 FC를 테마로 한 펍 <봉황당>이 그곳이다. 역시 리버풀의 오랜 팬인 김성민 대표[30] 가 이곳을 운영 중이다. 펍 내부에는 스티븐 제라드, 제이미 캐러거, 루이스 수아레스 등의 사인 유니폼과 감독 위르겐 클롭의 사인 액자도 비치되어 있다. 그 외에도 펍 내부 인테리어, 소소한 장식까지 리버풀 클럽의 테마를 하고 있다. 안에서 음식과 술을 먹으며 리버풀 경기를 시청할 수 있다. 리버풀 경기 때 뿐만 아니라 다른 해외축구 중계, 한국 국가대표 경기도 시청할 수 있다.
2015-16 시즌 리버풀의 유로파리그 결승전 때 60여명의 국내 콥들이 펍에 모여서 응원전을 가졌으며, 2017-18 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때는 주최를 맡아 700여명의 콥들이 서울 용산에 모여 단체 응원전을 펼쳤다. 관련 뉴스
현재는 욱일기 사용 근절을 위한 '8805 프로젝트'를 직접 진행하고 있다.
8. 인기
자국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기가 많은데, 특히 동남아 쪽의 인기가 폭발적이다. 태국 전직 총리이던 탁신 친나왓이 리버풀 구단을 사려다가 실패[31] 하여 맨체스터 시티 FC를 대신 샀던 일화도 유명하다.
칼스버그가 유니폼 스폰서를 하던 시절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를 여행한 이의 경험을 들어 보면 맨유보다 리버풀 서포터를 자주 만날 수 있었는데, 이 두 나라에선 이슬람 율법 때문에 주류 관련 광고를 금지하는 터라 덩달아 칼스버그가 가슴팍에 새겨진 유니폼도 판매 금지가 되어 칼스버그가 스폰서를 하기 전 유니폼이 아직도 나와 팔리고 있다며 투덜거리던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전술했듯이 동남아쪽 인기가 많은 편이라 프리시즌 친선경기도 동남아에서 많이 가졌는데, 클롭 부임 이후 시즌 전 선수단 컨디션 관리를 위해 장거리 비행을 자제하는 쪽으로 방침이 세워져 동남아쪽 팬들의 아쉬움이 커질 전망이다.
참고로 이런 인기를 방증이라도 하듯이, 구단 공식 스폰서 9개사 중 2개사가 동남아시아 쪽에 뿌리를 둔 회사[32] 이다.
이집트 국가대표 에이스, 모하메드 살라가 리버풀에서 맹활약 하면서 이집트에서의 위상은 가히 국민 클럽 그 이상이라 할 수 있다. 박지성이 한창 뛰던 맨유 클럽이 우리나라에서 가졌던 위상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미국에서는 아일랜드계가 많은 보스턴에서 인기가 많다. 당장 공식팬클럽이 당당히 보스턴에 있는 건 물론이요, 펜웨이 스포츠 그룹이 소유한 보스턴 레드삭스 전담 방송사 NESN에서도 리버풀 카테고리가 따로 있을 정도. 레드삭스 트윗 계정에서도 2018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전에 리버풀 응원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트윗
우리나라에서도 이스탄불의 기적 이후로[33] 입문한 팬들이 많은 편이다. 온,오프라인으로 팬클럽들이 형성되어 있으며 규모도 작지 않다. 2018년 9월에 'LFC 월드'란 이름으로 리버풀 공식 팬미팅 및 리버풀 경기 단체관람이 롯데월드타워에서 개최되었다. 리버풀 레전드인 루이스 가르시아, 사미 히피아, 제이슨 맥아티어가 내한했으며 잔디광장에 대형스크린을 설치해 리버풀 대 토트넘전을 중계하였다. 2000명 정도가 관람했으며 열렬한 응원 탓에 주변 아파트에서 소음 신고가 들어오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날 리버풀은 토트넘을 2대1로 이겼으며 롯데타워는 이날 행사를 기념해서 리버풀 응원 문구와 리버풀 레전드 이름이 담긴 레이저쇼를 벌여 큰 환호를 받았다. 관련 뉴스
8.1. 콥으로 유명한 사람들
8.1.1. 국내 유명인
- 하석진
- 진태현
- 신아영
- 이시영
- 송다혜
- 권율
- 서은우
- 정유나
- 오상진
- 김재욱
- 고우석
- 임찬규
- 이현경
- 김나진
- 임형철[34]
- 정준영
- 조희연[35]
- 룩삼
- 후이[36]
- 조나단(유튜버)[37]
- 삼대장(유튜버)[38]
- 허각[39]
- 엄준식
- 서지석
- 루밍쨩
- 김소혜
- 장규리
- 영알남
8.1.2. 해외 유명인
'''굵은 글씨는 리버풀 출신인 유명인이다.'''
- 넬슨 만델라
- 다니엘 크레이그
- 닥터 드레
- 대미언 루이스
- 라나 델 레이
- 르브론 제임스[40]
- 리암 니슨
- 킬리언 머피
- 마이크 마이어스
- 멜라니 C
- 미하엘 슈마허
- 브래드 피트
- 안젤리나 졸리
- 사무엘 L. 잭슨
- 리키 톰 리슨
- 셰이머스
- 스티브 커
- 앨런 워커
- 엘비스 코스텔로
- 제이슨 아이삭스
- 조 루소
- 존 리스고
- 존 올리버
- 존 비숍
- 카롤리네 보즈니아키[41]
- 클라이브 오웬
- 킴 캐트럴
- 페트리 칼리올라[42]
- 프란시스코 린도어
- 프랭크 아이에로
- 두아리파
- Loki Doki
9. 역대 감독
10. 히어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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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라이벌
11.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노스웨스트 더비
11.2. 에버튼 - 머지사이드 더비
11.3. 그 외
11.3.1. 맨체스터 시티 FC
2010년대 중반부터는 맨체스터 시티와 많이 엮이고 있는데 이 두 팀은 2013-14 시즌 PL 우승을 위해 치열하게 다툰 팀들이다. 실제로 만날 때 마다 엄청난 명승부들을 연출 중인데, 이 두 팀이 우승 경쟁을 했던 2013-14 시즌에도 두 번의 명승부를 연출했고,[46] 리버풀이 우승 경쟁에서 멀어져 있던 2014-15 시즌과 2015-16 시즌에도 맨시티만 만났다 하면 엄청난 경기력을 발휘하며 맨시티의 발목을 잡곤 했다.[47] 2015-16 시즌에는 리그 컵 결승전에서 만나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치열한 혈투를 펼친 끝에 맨시티가 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두 팀의 라이벌리가 더더욱 심화된 건 2017-18 시즌인데, 전 시즌인 2016-17 시즌에 펩 과르디올라가 맨시티에 부임하며[48] 이 대결이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했고, 2017-18 시즌에는 1승 1패를 주고받았다.[49] 23R 맨시티 홈 전 승리를 기점으로 리버풀이 상승세를 타고 있던 사이, UCL 8강에서 이 두 팀이 다시 한 번 만나게 됐는데, 리버풀이 불리할 거라는 전망을 뒤집고 맨시티를 상대로 보기 좋게 2승을 거두며 시티의 챔스 우승의 꿈을 무산시켰다. 이러한 이유로 맨시티 팬들은 그 동안 안필드에서 매번 팀의 발목을 잡아 온 리버풀을 매우 껄끄러워 한다. 2018-19 시즌에는 리버풀이 역대급 이적 시장을 보냄과 동시에 PL 출범 이후 팀 역사상 가장 좋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스쿼드를 구축, 전 시즌 압도적인 페이스로 우승을 차지한 맨시티의 유일한 대항마로 평가받으며 치열한 우승 경쟁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2013-14 시즌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타이틀 레이스인데, 공교롭게도 당시 타이틀 컨텐더들도 리버풀과 맨시티였다. 현재 EPL 최고의 팀들로 평가받고 있는 리버풀과 맨시티이고 양 팀 모두 스쿼드가 젊어 장기적으로도 전망이 밝으며 세계에서도 최고의 감독들로 평가받고 있는 펩과 클롭이기 때문에, 최근 잉글랜드 언론에서도 이 둘의 라이벌리를 주목하고 있다. 결국 2018-19 시즌 마지막 라운드까지 가는 피튀기는 역대급 타이틀 레이스 끝에 불과 승점 1점 차로 맨시티가 우승을 차지하며 리버풀 팬들 사이에도 자연스레 맨시티에 대한 반감이 생기고 있다. 하지만 이후 2019-20 시즌에 초반부터 자멸한 맨시티와 달리 리버풀이 괴물 같은 페이스를 보이며, 잉글랜드 프로축구 역사상 가장 빠르게 리그 우승을 조기 확정지었고 결국 맨시티에 복수를 성공한다.
11.3.2. AC 밀란
2000년대 중반 AC 밀란과 두 번이나 UCL 결승에서 맞붙어 한번씩 우승을 주고 받은 인연같은 악연이 있다. 특히 2005년 당시 리버풀이 기적적으로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기록한 일 때문에 해외 밀란 팬들뿐 아니라 세리에 매니아, 밀란 당사의 국내 밀란 팬들도 리버풀에게 반감을 꽤나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많이 희미해졌고 양팀의 감정은 추억거리 중 하나가 되었다. 오히려 양팀 모두 영광을 한번씩 맛 본 뒤 몇년 후 침체기가 찾아왔는데, 비슷한 시기에 힘든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양팀 팬들은 서로에게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게 되었다. 리버풀은 밀란보다 일찍 침체기를 겪었다가 챔피언스 리그에서 다시 한번 우승하며 회복한 반면, 밀란은 리버풀보다 위상, 팀 퀄리티 모두 월등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지금도 암흑기는 현재진행형이다.
11.3.3. 첼시 FC
2000년 대 당시 신흥 강호로 급부상한 첼시와도 UCL 토너먼트에서 지겹게 만나며[50] 물고 물리는 라이벌리를 형성했다. 이 당시 리버풀은 PL과 UCL에선 전통의 강호였지만 약간 삐걱거리며 들쭉날쭉한 성적을 거두고 있었고, 첼시는 한 러시아 사업가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UCL과 리그 트로피를 노리는 수준의 클럽으로 발돋움하던 중이었는데 이 시기가 마침 겹치면서 양 팀의 팬들과 감독, 선수들이 많이 대립하던 시기였다. 당시 두 팀의 감독인 무리뉴와 베니테즈는 심심하면 언론을 통해 서로를 비난하며 갈등의 수위를 높여갔고, 마침 제라드 vs. 램파드 같은 재미요소도 있었다. 언론도 전통 강호 vs. 신흥 강호의 대결이라며 매번 UCL에서 이 둘의 대결을 주목했다. 8강부터 도매스틱 매치가 허용되는 UCL 특성상 8강, 4강 같은 중요한 스테이지에서만 만났는데[51] , 2004-05 시즌과 2006-07 시즌에는 4강에서 만나 리버풀이 최종적으로 승리했고, 2007-08과 2008-09 시즌에는 각각 4강, 8강에서 만나 첼시가 웃었다. 나중에는 서로가 서로를 지긋지긋해 하는 수준까지 이르렀으며, 만날 때 마다 UCL 역사에 남을 만한[52] 피튀기는 혈투와 한 골 차 명승부가 벌어져서 조성되는 긴장감이 상당했던 라이벌리.[53] 이후에는 리버풀이 암흑기에 돌입하며 UCL 진출에 번번히 실패, 첼시와의 라이벌리도 잠잠해지나 했지만 당시 리버풀 최고의 스타였던 페르난도 토레스가 EPL 역대 최고액을 경신하고 첼시로 이적하며 라이벌리가 다시 타오르게 된다. 이후에도 2011-12 시즌 첼시와 FA 컵 결승에서 맞붙거나[54] , 2013-14 시즌 경쟁자 맨시티에 승리하며 우승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던 리버풀을 스티븐 제라드의 치명적인 실책을 바탕으로 안필드에서 첼시가 승리하며 EPL 출범 후 첫 우승의 꿈을 무산시켜 버리고, 2015-16 시즌 클롭 리버풀이 주제 무리뉴의 경질을 사실상 확정시키는 스탬포드 브릿지 원정승을 거두거나 2018-19 시즌 프리미어리그 7R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챔피언스리그 8강/4강 급 긴장감과 양 팀 모두 빠른 템포 및 경기력을 동반한 해당 시즌 전반기 최고의 경기 끝에 1-1로 비기는 등 만났다 하면 PL 역사에 회자될 만한 경기들을 많이 만들고 있다. 한편 2019-20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31R에 2위 맨시티에 승리하며 리버풀의 우승을 확정시켜줬다. 물론 첼시의 승리가 아니더라도 19-20 시즌은 압도적인 페이스를 보여준 리버풀의 우승이 확실했기에 첼시가 우승시켜줬다 수준은 전혀 아니지만 6년전 첼시가 되려 리버풀의 발목을 잡은 것에 대비되는 대목이다.
12. 기록과 통계
12.1. 우승 기록
한때 1부 리그 우승 18회로 오랜 기간 리그 최다 타이틀을 유지하였다. 허나 이후 맨유가 2012-13 시즌까지 1부 리그 우승을 20회로 늘린 반면 리버풀은 한동안 장기간의 리그 우승 실패로 인해 놀림받는 처지가 되기도 했었다. 그러다 2019-20 시즌, 리버풀은 프리미어 리그 출범 후 첫 우승을 차지하면서 30년 만에 1부 리그 통산 우승 횟수를 '''19회'''로 늘리는데 성공하였다.
또한 자국 컵 대회에서는 FA컵 7회 우승을 차지한 바 있으며, EFL컵 8회 우승으로 최다 우승 클럽 선두를 달리고 있다.
유럽 대항전에서는 더욱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유하고 있는데 먼저 UEFA 챔피언스 리그 통산 '''6회''' 우승으로, 유럽 전체를 통틀어 3번째로 우승을 많이 한 팀[55] 이자, 잉글랜드 클럽 중에서 독보적인 1위이다.[56] 게다가 잉글랜드에서는 유일하게 빅 이어를 영구 소장한 클럽이기도 하다.
그 다음, UEFA 유로파 리그 3회 우승으로 역시나 잉글랜드에서 우승 횟수가 가장 많고, 이 외에도 UEFA 슈퍼컵 4회 우승과 FIFA 클럽 월드컵 1회 우승을 달성한 바 있다.[57]
참고로 위에서 언급한 리버풀의 역대 메이저 대회 우승은 통산 48회로, 라이벌 맨유의 45회를 제치고 현재 잉글랜드 최다 우승팀이 되었다.[58]# 그리고 리버풀의 역대 메이저 대회 트로피 획득 현황은 홈구장 안필드와 훈련장 커크비 & 멜우드의 "'''The Champions Wall'''"에 부착되어 있다.
13. 역대 시즌
14. 이야깃거리
14.1. 풍선골 사건
2009년 10월 16일 뜻밖의 일이 일어나 축구계를 달궜다. 선덜랜드와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소년 콥이 비치볼을 던졌는데 선덜랜드의 공격수인 대런 벤트의 슈팅이 비치볼에 맞고 굴절되어 축구공이 골문으로 들어갔다. 사실 FIFA 경기 규칙에 따르면 이 경기는 그때 중단되었어야 하지만 주심이었던 Mike Jones가 이를 보지 못해 오심으로 득점으로 인정되었다. 이 경기는 0-1로 리버풀의 패로 끝나게 되는데 이 사건 이후 리버풀은 총 7경기에서 1승 3무 3패로 부진을 계속했으며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올림피크 리옹에 패하여 22년만의 4연패를 기록하게 된다.
참고로 그 꼬마 콥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칼럼 퍼거슨이었다고 하며 그 비치볼을 던진 소년 리버풀 팬은 같은 리버풀 팬으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았다. 이 사건을 한국에서는 풍선골 사건이라고 보통 칭하고 있다.
14.2. 고양이 난입
2011-12 시즌 안필드에서 열린 리버풀과 토트넘의 EPL 경기 도중에 갑자기 고양이가 난입했다. 약 1분 동안 경기가 진행되지 못하여 안전요원들이 바깥으로 내보냈는데, 안필드 측에서 고양이를 맡으면서 빌 샹클리 감독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이름인 샹크스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 고양이는 전세계적으로 이목을 끌게 되어 트위터 계정까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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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서포터들에 의하면 이 경기 말고도 이전부터 안필드 스터디움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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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공식 마스코트로 사용하길 원했지만 구단 측에서는 돌봐주다가 동물 보호소로 보냈다. 그리고 입양되었다고 한다.
14.3. 빡빡풀
2010-11 시즌부터 2012-13 시즌까지 리버풀에 빡빡 민 선수들이 많아 빡빡풀이라는 옛날 별명도 가지고 있었다. 현재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맨시티와 비슷했던 수준이다. 특히 2010-11 시즌은 당시 '예능 골키퍼'였던 페페 레이나를 포함하여 글렌 존슨, 마르틴 스크르텔, 폴 콘체스키, 하울 메이렐레스, 제이 스피어링, 존조 셸비, 조 콜, 라이언 바벨, 다비드 은고그 등 18명의 출전 선수 명단 중 대부분이 빡빡이 선수들이었고 이들은 예능 축구팀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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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세레모니 도중 마르틴 스크르텔과 하울 메이렐레스, 제이 스피어링이 한데 모여 빡빡이들끼리 서로 껴안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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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2018년에 리버풀의 센터백 데얀 로브렌이 머리를 밀며 올드팬들에게 이 시절을 회상시켜주기도 했다.
14.4. 영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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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과 이스탄불의 기적을 소재로 한 영화가 있다. 영화 제목은 <WILL>이라고 하며 주인공인 어린 아이 '윌'은 부모님이 없어 시설에서 지내지만 누구보다도 리버풀에 대한 열정은 남다른 꼬마이다. 어느날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친아빠가 시설로 찾아오고 그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주인공을 위해 친아빠는 이스탄불로 가는 챔스 결승 티켓을 구해 온다. 친아빠와 주인공은 You'll Never Walk Alone을 같이 부르고 주인공은 조금씩 아빠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그러던 얼마후 친아빠가 갑자기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 사고를 당하고 주인공은 홀로 시설을 뛰쳐나와 아버지와 약속했던 챔스 결승을 직관하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인상적인 부분은 어린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나이 먹은 리버풀 콥들보다 리버풀 역사에 대해 빠삭하다는 점. 성인인 콥들에게 리버풀 역사를 되려 가르쳐 주는 수준이다. 진정한 성콥. 이 영화 후반부에 케니 달글리시, 제이미 캐러거, 스티븐 제라드가 직접 출연하며 결국 리버풀이 AC밀란을 승부차기 끝에 꺾고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영상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난다.
힐스버러 참사를 배경으로 한 단편 영화도 있다. 힐즈버러 축구장의 참사를 배경으로 머지사이드에 살고 있건 한 가족에게 찾아온 일화를 가상으로 재구성한 영화이다. 영화의 배경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꼬마 리암이 친구들과 축구를 하러 나가는데, 리암의 친구들, 장벽을 넘어온 아이들의 장난으로 리암은 코피를 쏟으며 느끼는 위협감을 시청자에게 전달하며 시작되는데, 당시의 비극적인 순간을 영화의 입장에서 각색하여 묘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5. 사건사고 및 논란
15.1. 헤이젤 참사
15.2. 힐스버러 참사
15.3. 욱일기 관련 논란
16. 공식 파트너십
17. 스태프
18. 스쿼드
19. 유소년 아카데미
마이클 오언 - 스티븐 제라드 - 제이미 캐러거가 한번에 나온 영향인지 유소년 아카데미 시설이 좋은 평가를 받는 걸로 유명하다.[59][60] 2013년 6월에 UEFA에서 선정한 최고의 유소년 아카데미를 보유한 클럽에 리버풀이 유럽 TOP 5, 잉글랜드 클럽 중에선 1위로 선정되었다.[61] 이후 또 다른 스타급 로컬 보이 출신으로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 배출한 바 있다.
20. 관련 문헌
- 축구의 전설 프리미어리그: 리버풀(원제: The Liverpool Miscellany) - 레오 모이니헌 저/문은실 역. 보누스. 2010.
- 누구보다 리버풀 전문가가 되고 싶다 - 이성모 저. 브레인스토어.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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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1년 현재 창단 129년째이며, 2022년에는 130주년을 맞는다.[2] 에버튼도 리버풀에 있다. 단지 경기장만 다를 뿐.[3] 국내 언론에서 흔히 사용하는 표현인 레즈 더비(Reds Derby)는 잘못된 표현이다. 두 팀 다 붉은 색 계열의 유니폼을 입긴 하지만, 현지에서 레즈(Reds)는 오직 리버풀만을 지칭하는 단어이고, 맨유는 레드 데빌즈(Red Devils), 또는 그냥 유나이티드(United)라는 단어로 지칭한다.[4] 존 헨리가 소유한 스포츠 분야 투자 전문 기업으로 FSG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보스턴 레드삭스 (2002년 인수), 나스카 러쉬 펜웨이 레이싱팀 (2007년 인수), '''리버풀 FC''' (2010년 인수)를 소유하고 있으며, 펜웨이 파크와 안필드의 소유권자이다.[5] 공식 페이지[6] 더 콥스.[7] Liverpool FC.[8] 콥끼리끼리. 카페 규모 순서 이다.[9] 디시인사이드 리버풀 FC 마이너 갤러리. 디시인사이드 내 축구팀 마이너갤러리 중에서 글리젠이 가장 활발하고 활동인원 수가 많다.[10] 빌 샹클리 감독이 전성기의 초석을 다졌고, 그의 후임인 페이즐리는 9시즌 동안 채리티 실드, 슈퍼컵 트로피 포함 무려 20개의 트로피를 쓸어담았다.[11] 레알 마드리드의 13회, AC 밀란의 7회 다음으로 바이에른 뮌헨과 함께 3번째로 우승횟수가 많다.(총 6회)[12] 과거 UEFA 챔피언스 리그를 5회 이상 우승하거나 3회 연속 우승한 팀에게는 빅 이어를 영구 소장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었는데, 2009년 UEFA에서 이 규정을 폐지함으로써 향후 다른 클럽들이 이 조건을 충족해도 더 이상 빅 이어를 영구 소장할 수 없게 되었다. 현재 빅 이어를 영구 소장하고 있는 클럽은 레알 마드리드 CF, AFC 아약스, FC 바이에른 뮌헨, AC 밀란, 리버풀 FC, FC 바르셀로나까지 유럽 전체를 통틀어 단 6팀 뿐이다.[13] 리버풀 시의 상징인 라이버 버드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14] 매 시즌마다 무조건 최소 1개씩은 우승 트로피를 따내는 저력을 보였다.[15] 관중석이 현대화되고 중계권료가 폭등하여 관중과 수입 증가로 자본이 많이 유입되자 상위 구단들은 자금을 자본화하고 수익 창출을 위해 기존의 풋볼 리그를 떠나게 된다.[16] 물론 팀이 하락세를 겪었던 암흑기는 제외하고[17] 존 헨리의 FSG는 초반기엔 팬들의 소망과 다른 행동을 보여주는 보드진들로 엇박자를 보여주었지만 위르겐 클롭에게 영입 권한을 대부분 맡긴 지금은 팬들에게 든든한 구단주의 모습이 되었다.[18] 분명 재능은 있는 감독이었으나 리버풀이라는 구단을 이끌기엔 그릇의 크기가 작았던 한계를 지녔던 인물이었다.[19] 지금의 유로파 리그[20] 선수 항목에도 작성되어 있지만, 경기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매우 문제가 많은 선수였다.[21] 그나마 공격수 암흑기때 한 줄기의 빛이 되어줬던 공격수가 다니엘 스터리지였다. 나올 때마다 항상 밥 값 이상은 해주었으니.. [22] 얼마 안 되어 첼시가 케파 아리사발라가를 알리송의 기록보다 더 높은 이적료를 달성하며 영입했다.[23] 사실 설립 초창기 구단의 공식 명칭도 Everton F.C. and Athletic Grounds Ltd였을 만큼, 아직 리버풀로서의 정체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고 볼 수 있겠다.[24] 리버풀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이자 1980~90년대에 지미 그리브스와 방송에서 호흡을 맞추었다.[25] 이 곡이 리버풀에서 불리게 되는 계기를 준 구단이다. 구체적으로는 2018년 봄에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맞붙은 FC 포르투가 홈에서 5-0으로 대패하는 결과로 몰리는 상황에서도 경기 내내 포기하지 않고 이 응원가를 부르던 포르투 팬들의 열정적인 모습이 콥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에 '제이미 웹스터'라는 리버풀 응원가를 즐겨 부르는 뮤지션이 리버풀에 맞는 버전을 만들었고 리버풀 팬들에게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었다. 그리고 맨시티를 3-0으로 대파하는 챔스 8강 1차전 경기에서 본격적으로 데뷔하여 전세계 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겼고, 그대로 The Fields of Anfield Road 이상의 애창곡이 되었다.[26] 대팍에서 가장 웅장하게 느껴진다는 응원가 중 하나인 ‘그 겨울’이 바로 이 멜로디를 따른 것이다[27] 2016-17시즌 프리미어 리그 34R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홈 경기에서 1:2로 패배한 이후, 리버풀은 안필드에서 안방불패 신화를 이어왔다. 그러다 2020-21시즌 프리미어 리그 18R 번리와의 홈 경기에서 0:1로 패배하며 홈 무패 연속 기록을 마감하였다. 이는 첼시의 리그 홈 86경기 연속 무패 기록에 이어, 잉글랜드 1부 리그 최다 연속 홈 무패 역대 2위에 랭크될 만큼 대기록이다. 여담으로 첼시의 기록을 마감시킨 팀이 바로 2008년 10월 27일,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승리한 리버풀이었다.[28] 24년간 선수생활을 하며 유럽의 많은 경기장에서 뛰었던 부폰은 최고의 분위기 경기장은 안필드로, 경기시작 15분에서 20분간은 집중하기 어려웠다고 회상한 바 있었다.[29] 비틀즈의 멤버 모두 리버풀 출신이다.[30] 유학 중 리버풀 출신 룸메이트를 따라서 간 챔스 결승전, 이스탄불의 기적을 직접 관전하고 그때부터 콥이 되었다. 선수 중에서 스티븐 제라드를 가장 좋아한다.[31] 아시아, 동남아 구단주에 대한 거부감이 서포터들이나 주주들에게 꽤 컸었는데 탁신이 국고금 및 본인의 비자금으로 리버풀을 산다는 소식이 잉글랜드 언론을 통해 알려졌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32] 구단 공식 항공사: 말레이시아 항공, 구단 공식 코코넛 워터: 차오코[33] 그 전부터도 국내에서 해외축구 보는 사람들 중에서 프리미어리그의 강호이자 명성으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리버풀을 응원하는 팬들이 적지 않았다.[34] 현 SPOTV 축구 해설위원이신 그 사람 맞다. 모 SNS 페이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리버풀을 통해 해외축구 입문을 했음을 밝혔다.[35]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감 그 사람 맞다! 링크 [36] 영상 참조[37] 영상 참조[38] 이재영이 콥이다.[39] 오하영의 유튜브에서 밝혔다.[40] 그냥 팬이 아니라 리버풀의 주주이다.[41] 덴마크 여성 테니스 선수. 2018 호주 오픈 여자 단식 우승자.[42] 비정상회담과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나온 그 분 맞다. 2017-18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당일 리버풀 유니폼을 입고 홍대에 온 것을 목격한 사람이 수십 명. 심지어 본인이 인스타그램 라이브로까지 인증을 했고 당일 봉황당에서 함께 응원까지 했다. 핀란드 국적의 선수 사미 히피아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본인의 인스타그램에서 이를 직접 인정했다. 페트리 본인의 말에 의하면 핀란드 현지에서 리버풀 FC의 인지도는 대한민국에 비유를 하면 거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나 토트넘 홋스퍼 FC급의 국민구단이라고 하며, 히피아는 거의 대한민국으로 치면 해버지급 영웅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43] 2017년에 창단 125주년을 기념하여 구단에서 제작한 리버풀 FC 드림씬 아트워크. 클럽을 형성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19명의 레전드들과 클럽의 미래를 상징하는 1명의 특별한 팬이 드레싱룸에 모여 있는데, 좌측부터 차례로 밥 페이즐리, 위르겐 클롭, 존 하울딩, 빌 샹클리, 톰 왓슨, 알렉스 레이스벡, 스티븐 제라드, 존 반스, 케니 달글리시, 빌리 리델, 이안 캘러한, 조던 헨더슨, 엘리샤 스콧, 엠린 휴즈, 로저 헌트, 제이미 캐러거, 조셉 서스턴, 이안 러쉬, 고든 호지슨, 레이 클레멘스가 위치해 있다.[44] 100년이 훌쩍 넘는 클럽의 오랜 역사 동안 무수한 선수와 감독들이 머물렀으며, 또 수많은 레전드들이 클럽에 헌신하며 크게 공헌하였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큰 족적을 남긴 단 10명 만이 현재 LFC Heroes에 올라있는데, 사실상 명예의 전당과 같은 개념으로 봐도 무방하다. 참고로 공홈에서는 여기에 들어갈 인원을 조만간 더 추가할 예정이라고 한다.[45] 실제로 기존에 기재되었던 것처럼 로이 에반스, 제라르 울리에, 라파엘 베니테스, 케빈 키건, 존 토샥, 엠린 휴즈, 필 톰슨, 그레이엄 수네스, 로비 파울러, 제이미 레드냅, 존 알드리지, 스티브 맥마나만, 예지 두덱, 욘 아르네 리세, 루이스 가르시아, 사미 히피아, 마이클 오언, 제이미 캐러거, 디르크 카윗, 다니엘 아게르, 루카스 레이바 등 수많은 선수와 감독들이 리버풀의 레전드로 평가 받는다. 또 현역으로 있는 위르겐 클롭 감독과 주장 조던 헨더슨 역시 이미 클럽의 레전드 반열에 올랐단 평이 서포터들 사이에서 지배적이라 이들의 경우, 차후 추가될 가능성이 높다.[46] 특히 안필드에서 벌어진 34R 리그 2차전은 해당 시즌 최고의 프리미어리그 경기이자 전형적인 프리미어리그 클래식으로 회자되곤 한다. 한국 팬 한정으로 쿠티뉴의 위성수리슛으로 리버풀이 승리한 재밌는 기억으로 남아있는 경기기도 하다. 당시 경기 후반전에 위성 문제로 한국쪽 중계가 계속 끊키곤 했는데, 2대2 상황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리버풀 쿠티뉴의 골이 터지는 순간 귀신같이 위성이 끊키는 걸 멈추고 경기를 부드럽게 송출하기 시작했다. 그 골 역시 상당히 멋있는 중거리슛이었는데, 팬들은 멋진 골에 위성이 놀라서 고쳐졌다 라며 즐거워했다.[47] 2014-15 시즌에는 선두 첼시를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던 2위 맨시티를 안필드에서 2-1로 잡아버렸고, 2015-16 시즌에는 위르겐 클롭 부임과 동시에 맨시티를 상대로 아예 두 번 다 3골 차 대승을 거두며 맨시티를 담궈버렸다.[48] 펩은 바이에른 뮌헨 시절 클롭이 이끌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매번 명승부를 펼쳤었다. 오히려 클롭이 전력이 상대적으로 밀리는 도르트문트로 과르디올라의 발목을 여러번 잡는 상황도 심심찮게 나왔다.[49] 이티하드에서는 리버풀의 수적 열세 속에 맨시티가 5-0으로 리버풀을 격파했지만, 안필드에서는 해당 시즌 최고의 프리미어리그 경기 끝에 리버풀이 4-3 승리를 거뒀다.[50] 2004-05 시즌부터 2008-09 시즌까지 한 차례도 빼놓지 않고 5시즌 연속으로 만났다. 2010년 대 UCL에서 지겹게 만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레알 마드리드도 4시즌 연속 대결이었는데 그걸 뛰어넘을 정도로 대결했다는 소리다.[51] 이례적으로 2005-06 시즌엔 조별리그에서 만났다. 디펜딩 챔피언이었지만 전 시즌 프리미어리그 5위를 기록한 리버풀이 웨일스 팀 자격으로 참가했기 때문. 해당 시즌 후반기에는 FA컵 4강에서 만나 리버풀이 1-2로 승리한 후 결승에서 웨스트 햄을 꺾고 우승.[52] 실제로 2000년대 UCL을 대표하는 클래식 매치들이 두 팀 간의 대결에서 엄청나게 많이 나왔다.[53] 2004-05 시즌 4강에서는 치열한 공방전 끝에 안필드에서 루이스 가르시아의 그 유명한 일명 유령골이 터지며 리버풀이 가까스로 이스탄불로 향했고, 2006-07 시즌 4강에서는 각자 홈에서 1-0 승리를 거두고 승부차기까지 치른 끝에 리버풀이 결승행 티켓을 얻었다. 2007-08 시즌에는 또 4강에서 만나 막판 욘 아르네 리세의 자책골로 다 잡은 홈에서의 승리를 놓친 리버풀이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며 승부를 연장전까지 끌고 갔지만 첼시의 램파드가 1인 하드캐리 퍼포먼스를 선보인 끝에 리버풀을 굴복시켰고, 2008-09 시즌에는 8강에서 만나 안필드에서 첼시가 승리,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엎치락 뒤치락하는 난타전 끝에 4-4라는 UCL 역대급 클래식 명승부가 탄생, 첼시가 4강에 진출하게 된다.[54] 결과는 2-1로 첼시 우승[55] 1위 레알 마드리드 CF(13회), 2위 AC 밀란(7회), 3위 리버풀 FC(6회)[5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3회, 노팅엄 포레스트가 2회, 아스톤 빌라와 첼시는 각각 1회로 이 클럽들의 빅 이어 숫자를 합쳐야 리버풀과 동등한 횟수이다.[57] 리버풀은 잉글랜드 클럽 중 최초로 한 해에 2018-19 UEFA 챔피언스 리그 - 2019 UEFA 슈퍼컵 - 2019 FIFA 클럽 월드컵을 석권하며 컨티넨탈 트레블을 달성하였다. 잉글랜드 클럽 중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유이하게 챔스, 슈퍼컵, 클월을 우승한 클럽이 되었는데 맨유의 경우, 위 세 개의 대회를 한 해에 석권한 것은 아니다.[58] 다만 이 기록은 리그 개막 직전 이벤트 매치 격으로 치러지는 커뮤니티 실드를 제외한 것으로, 이를 포함한다면 맨유의 우승 횟수가 가장 많다. 사실 메이저 대회의 기준도 이를 기사화하는 언론사부터 각 클럽 및 서포터 마다 다르게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59] 단 저 셋이 혜성처럼 등장한 이후 한동안 재미를 못봐서 결국 전임자였던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이 한차례 개혁을 하였다. 현재의 유소년 아카데미는 그 산물.[60] 사실 제라드 이후에도 유스가 배출하는 유망주의 양적인 측면에서는 여전히 세계 정상급이긴 했는데, 이상하게도 세계적인 선수까지는 성장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프리미어 리그 중하위권에는 정작 리버풀에는 드문 리버풀 유스 출신 주전선수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로 리버풀 주전층의 두께가 얇아진 것도 원인중 하나라고 봐야 할 것이다. 1군 선수가 부족하다보니 유스선수들이 빨리 1군에 빨리 데뷔하게 되고, 리그에서 뛸만한 선수들은 많이 배출하게 되지만, 세계구급 재능은 단순히 많이 뛴다고 생겨나는 것은 아니니... 그러다 2019년 마침내 월드 클래스급 라이트백으로 성장한 로컬 보이 출신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를 배출하였다.[61] 1위는 아약스, 2위는 바르샤, 3위는 도르트문트, 4위는 레알 마드리드